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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역사 주인공 '이순신' 실제 이야기

PBplayer 2024. 1. 23. 13:02

명량 이순신(최민식) 그외 장수들

불패의 신화 "이순진 장군" 그에 대한 더 깊어진 존경심

'나라의 공을 세운 충성스러운 무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여러 전투 실화 중 영화 "명량"을 통해 명량대첩의 이야기를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순진 장국을 모를 수 없습니다. 이순신장군은 어려서부터 교과서에서나 인물 순위 중 가장 높게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어렸을 적 이순진 장군은 존경한다고 말하는 어린이는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용맹함과 전설적으로 믿기지 않는 이야기, 마치 권선징악처럼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의지와 기백은 꺾이지 않는다.라는 정신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시작에서 임진왜란이 발생한 지 6년이란 정유년 이순신장군은 수군통제사에서 파직당하고 한양으로 압송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음력 7월 거제도 앞 칠천량에서는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준이 모두 죽는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승기를 잡은 일본군은 임진년 이후 전라도 땅을 모두 휘저으며 15일 만에 수도 한양으로 돌진하여 한양을 공략하려는 계획을 합니다. "백의종군 " 모든 군계급에서 직급을 내려놓고, 흰 백 옷 의 를 입은 온전한 군인 신분으로 전쟁터에 나간 이순신 장군은 전라도 지역을 일본군에게 지켜내기 위해 군사와 무기를 정비합니다. 거제도 앞바다에서 참패를 맞본 조선 수군의 남아있는 12척의 배를 인수받아 조선의 남해 지역의 300척이라는 엄청난 일본군의 군선을 막아 내는 전투 "명량대첩" 영화 첫 장면의 내용부터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도 백의종군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그려지지만, 이순신 장군은 머리싸움이나 전투능력에서 뛰어난 장군이기 때문에 조정에 당파 싸움으로 이런 유능한 장군은 경계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로 인해 공만 인정받아야 할 장군이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실과 그럼에도 전투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병력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장군의 모습은 정말 존경심을 다시 새삼 표하게 됩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영화 명량에서 흥분을 최고로 이끄는 명량해전 전투장면 중에 '거북선'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거론하면 거북선을 항상 같이 이야기하게 됩니다. 거북선은 사실 영화와 달리 노량에서의 전투에서 처음 사용하게 됩니다. 거북선의 간단한 설명은 장갑선이라 배의 겉은 철판으로 덮고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배로 설명 가능합니다. 거북선을 이순신장군이 처음 만든 것은 아니지만 거북선의 활용을 극대화시킨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 맞습니다. 거북선의 외형은 날카로운 것들로 등껍질을 한 모습과 거북이라 하지만 용의 형상하고 불을 내뿜는 배라고 나옵니다. 12척의 배로 133척을 이긴 명량대첩을 그린 영화 "명량"에서도 거북선이 등장하는 모습에서 피가 끓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명량대첩" 이외 "이순신 장군" 엄청난 전투력

23전 23승이라는 불패의 신화를 갖은 이순신 장군의 역사상 주요 전투를 찾아보면서 장군의 위대함에 다시 감탄합니다.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의 기세가 몰려 전라도 지역의 사수를 위해 이순신 장군이 처음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옥포해전(1592년 5월 7일)이라 하는 일본군에게 26척의 배를 잃게 했으며, 기세에 몰린 조선에 큰 힘을 얻게 되는 전투입니다. 이후 너무나도 유명한 한산도대첩(1592년 7월 8일) 학익진 전술로 일본의 66척의 배를 격파하는 대 전투입니다. 이전투는 한산도라는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는 사방이 막혀 적을 궁지에 몰기 좋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투였습니다. 일본군의 피해는 엄청났다고 전해옵니다. 86명의 적군의 목숨과 바다의 시체, 400여 명이 넘는 전의를 잃은 일본군은 육지로 도망쳤으나 육지 역시 한산도 주변일대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이렇게 한산대대첩은 임진왜란 때의 3 대첩 중 하나로 불리며, 전술적이나 업적으로 엄청난 전투였습니다. 많은 전투 중 조선과 일본의 바다 마지막전투는 노량대첩(1598년 11월 19일)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의 진린이과 일본군을 모두 없애려 합니다. 하지만 진린은 일본군에게 뇌물을 받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많은 패전을 맛본 일 보은 이순신 장군을 잡기 위해 500여 척을 준비하는 등 엄청난 전투를 준비하지만, 50여 척의 격파와 200여 명이 목숨을 잃게 되며 다시 패전의 맛을 보며 도망칩니다. 도망치는 일본군을 모두 잡을 결심을 한 이순신장군은 이들을 뒤쫓으며 추격합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전투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이순신 장군은 죽음 앞에서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않고 적을 쫓아 격파하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의 전사 전투는 마무리되었지만, 이순신장군의 업적은 조선과 일본의 전쟁을 끝내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그 공을 모두 인정받는 이순신 장군, 홀로 외로운 바다에서 많은 결심과 굳은 의지로 지금의 우리를 지켜주신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며 경애를 표합니다.